꿈이 주인을 찾을 때 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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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16회 작성일Date 26-05-29 15:42본문
‘꿈(dream)’이라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수면 중에 겪는 심리적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입니다.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이 두 가지가 맞닿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을 자며 꿈을 꾸는데 그 꿈이 하늘로부터 온 특별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구별을 위해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꿈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단연 창세기입니다. 아브라함, 아비멜렉, 야곱, 라반, 그리고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을 꾼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오직 요셉만이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아주 독특한 종류의 꿈을 거듭하여 꿉니다.
요셉 외에 다른 사람들의 꿈에는 하나님이나 천사가 직접 나타나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지시하십니다.
꿈속이지만 분명한 음성과 지시가 주어지기에, 그리 큰 분별력이 필요하지 않은 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결이 다릅니다. 하나님이나 사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고, 오직 상징만 주어져 반드시 ‘해석’해야 하는 종류의 꿈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과 그 형태가 유사합니다. 이처럼 바른 해석을 요구하는 꿈들은 자칫 여러 가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꿈을 구실로 다른 신을 따르게 하는 꿈꾸는 자들(신 13:1-3), 자기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렘 23:25-26),
그리고 헛된 위로로 백성을 방황하게 하는 복술자들이 있었습니다(슥 10:2).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유사한 혼란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꿈이 아직 ‘본래의 주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동일한 꿈을 겹쳐 꾸었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단을 향해 절하는 꿈, 그리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을 향해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요셉에게는 최고가 된다는 우쭐함을 주었고, 형들의 해석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창 37:8).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가치관에 갇힌 해석일 뿐이었습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즉각적으로 해몽을 내렸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의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결코 권력을 휘둘러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주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꾼 자도, 그 이야기를 듣는 자도 인간의 선입견으로 말하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 꿈의 시작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꾼 꿈이지만, 그 꿈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꿈’으로 수용해 가는 성숙의 과정 말입니다.
요셉이 인생의 가장 낮아진 자리인 종살이와 감옥이라는 광야에서 배워야 했던 성숙은 왕좌에 버금가는 최고가 되는 꿈이 ‘지배의 다스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섬김의 자리’임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들이 모진 질곡의 시간 속에서 배워야 했던 성숙은 누군가 자신보다 높아질 때 그 자리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축복의 통로’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적인 성숙은 시련의 시간을 통과한 후 꿈이 비로소 본래의 주인인 ‘하나님’을 찾을 때 일어나는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김 재 구 목사
드물기는 하지만 때로는 이 두 가지가 맞닿는 경우도 있습니다. 잠을 자며 꿈을 꾸는데 그 꿈이 하늘로부터 온 특별한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구별을 위해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꿈 이야기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은 단연 창세기입니다. 아브라함, 아비멜렉, 야곱, 라반, 그리고 요셉이 하나님의 계시가 담긴 꿈을 꾼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중 오직 요셉만이 다른 이들과 구별되는 아주 독특한 종류의 꿈을 거듭하여 꿉니다.
요셉 외에 다른 사람들의 꿈에는 하나님이나 천사가 직접 나타나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지시하십니다.
꿈속이지만 분명한 음성과 지시가 주어지기에, 그리 큰 분별력이 필요하지 않은 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결이 다릅니다. 하나님이나 사자가 직접 나타나지 않고, 오직 상징만 주어져 반드시 ‘해석’해야 하는 종류의 꿈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밤마다 꾸는 꿈과 그 형태가 유사합니다. 이처럼 바른 해석을 요구하는 꿈들은 자칫 여러 가지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꿈을 구실로 다른 신을 따르게 하는 꿈꾸는 자들(신 13:1-3), 자기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렘 23:25-26),
그리고 헛된 위로로 백성을 방황하게 하는 복술자들이 있었습니다(슥 10:2).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유사한 혼란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는, 꿈이 아직 ‘본래의 주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태는 다르지만 의미는 동일한 꿈을 겹쳐 꾸었습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단을 향해 절하는 꿈, 그리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신을 향해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이 꿈은 요셉에게는 최고가 된다는 우쭐함을 주었고, 형들의 해석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창 37:8).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가치관에 갇힌 해석일 뿐이었습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즉각적으로 해몽을 내렸지만, 그 속에 담긴 진짜 의미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은 결코 권력을 휘둘러 누군가를 억압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주어지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꿈을 꾼 자도, 그 이야기를 듣는 자도 인간의 선입견으로 말하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 꿈의 시작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꾼 꿈이지만, 그 꿈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꿈’으로 수용해 가는 성숙의 과정 말입니다.
요셉이 인생의 가장 낮아진 자리인 종살이와 감옥이라는 광야에서 배워야 했던 성숙은 왕좌에 버금가는 최고가 되는 꿈이 ‘지배의 다스림’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섬김의 자리’임을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들이 모진 질곡의 시간 속에서 배워야 했던 성숙은 누군가 자신보다 높아질 때 그 자리가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살리는 ‘축복의 통로’임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영적인 성숙은 시련의 시간을 통과한 후 꿈이 비로소 본래의 주인인 ‘하나님’을 찾을 때 일어나는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