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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주여,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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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25회 작성일Date 26-05-2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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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간절함이 더해질 때, 우리 입술에서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는 외침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친숙한 ‘주여 삼창’입니다.
“주여, 주여, 주여!” 세 번을 반복하여 부르짖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며, 오직 주의 응답만을 고대한다는 전심의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절박한 부르짖음의 원형을 찾는다면 단연 다니엘의 기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기나긴 포로기의 끝자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열망했던 다니엘은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단 9:19). ‘주여’라는 호칭 사이, 사이에 간절한 간구의 내용이 스며있지만,
'오직 주님만 바라보는 그 절박함은 오늘 우리의 ‘주여 삼창’과 깊이 닮아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성경의 또 다른 ‘삼창’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상황을 유발한 근본 원인이 된 하나님이 외면하셨던 ‘거짓 삼창’이었습니다.
유다가 파멸의 길로 치닫던 시절, 예레미야 선지자가 성전 문 앞에 서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며 눈물로 외쳤던 말씀입니다: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 7:3-4).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현장에서는 온갖 불의와 무관심으로 일관하면서도, 성전 문을 들어서며 “여호와의 성전이라!”를 반복하여 세 번 외쳤습니다.
성전이 여기 있으니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영적 불감증, 그리고 종교적 주문과도 같은 거짓 안도감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입술의 외침이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삶의 길과 행위를 바르게 고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입니다.

    그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조작해 낸 ‘거짓된 삼창’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생명의 삼창’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 이사야 선지자가 천상 성전에서 보았던 영광스러운 장면입니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 6:3).
스랍(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외치던 ‘거룩의 삼창’이 고동치는 천상 예배는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계 4:8),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질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거룩의 삼창’이 주님 오시는 날까지 지켜야 할 예배자의 삶이라는 것도 분명해집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저 멀리 구름 위에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구약과 신약이 동일하게 증언하듯, 거룩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 살아가는 ‘실천’입니다(민 15:40; 요 17:17-19).
그러므로 골방과 성전에서 “주여!”를 거듭 외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삶의 책임이 따릅니다.
행함이 없는 부르짖음을 향해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엄히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 6:46).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반드시 주의 말씀 앞에 자신의 삶을 꺾어 “아멘”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뜨거운 부르짖음에만 머물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반응하는 삶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기도의 자리에서 부르짖은 “주여, 주여, 주여!”의 간절함은 삶의 현장에서 피어나는 “아멘, 아멘, 아멘!”의 신실한 순종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삼창’은 ‘아멘 삼창’과 만나 마침내 ‘거룩 삼창’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