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미명을 통과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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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회 작성일Date 26-02-05 18:21본문
‘새벽 미명(未明)’은 아침의 여명이 밝아오기 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너무나 어두워서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어둠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신앙인의 삶에도 그런 순간은 찾아옵니다. 이미 겪어 보신 분도 있고, 현재 겪고 있는 분도 있으며, 미래에 겪게 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간을 신속히 빠져나가야 할 고통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새벽 미명의 칠흑 같은 어둠까지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17살에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삶에서 갑작스레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기에 덧붙여 안정된 종살이를 하나 싶다가 갑작스레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만약 풀려난다 해도 범죄자라는 오명이 늘 붙어 다닐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성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니 더욱 파렴치한으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13년의 세월 동안 종살이, 감옥살이로 인생이 철저히 무너지고, 망가진 삶을 살아갑니다. 남의 이야기이다 보니 13년도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을 거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간은 고통스럽게 점점 더 깊은 지옥으로 빨려들어 가는 시간일 것입니다.
요셉의 삶에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주인에게도 인정받으며 형통하였다고 하고(창 39:2), 감옥살이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간수장에게 인정받으며 형통하였다고 합니다(창 39:23). 그럼에도 그 세월은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시간의 막바지에 술 맡은 관원장을 향한 요셉의 호소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 40:14-15). 기나긴 세월의 고통스런 상황을 견디다 견디다 한계치에 다다른 인생의 억울함이 가득히 묻어나 있는 호소가 요셉의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이 간절한 호소를 술 맡은 관원장이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2년 뒤 바로가 꿈을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요셉을 기억합니다. 13년 세월의 마지막 정점이 되는 시간인 그 2년은 요셉에게 그 어디에서도 빛을 볼 수 없는 새벽 미명의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 함께하시나 현실은 더 이상 짙어질 수 없는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새벽 미명의 시간을 허락하실까요? 요셉에 관해 말하는 시편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8-19). 이렇게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몸이 묶인 삶, 그 어둠의 시간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의 단련이었다고 합니다. 단련은 금과 은을 제련하여 순금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세워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세상의 말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신뢰를 두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2년이 여호와의 단련을 통해 미명 속에서도 말씀의 빛을 보는 시간이며, 마침내 요셉의 입에서 억울함의 호소인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가 아닌 ‘하나님께서’라는 고백만이 흘러나오는 시간이 됩니다. 삶의 새벽 미명은 이 길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김 재 구 목사
요셉의 이야기는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17살에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던 삶에서 갑작스레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는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기에 덧붙여 안정된 종살이를 하나 싶다가 갑작스레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만약 풀려난다 해도 범죄자라는 오명이 늘 붙어 다닐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성범죄에 해당하는 것이니 더욱 파렴치한으로 몰릴 것입니다. 그렇게 13년의 세월 동안 종살이, 감옥살이로 인생이 철저히 무너지고, 망가진 삶을 살아갑니다. 남의 이야기이다 보니 13년도 짧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을 거쳐 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기간은 고통스럽게 점점 더 깊은 지옥으로 빨려들어 가는 시간일 것입니다.
요셉의 삶에 종살이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주인에게도 인정받으며 형통하였다고 하고(창 39:2), 감옥살이할 때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간수장에게 인정받으며 형통하였다고 합니다(창 39:23). 그럼에도 그 세월은 결코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시간의 막바지에 술 맡은 관원장을 향한 요셉의 호소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창 40:14-15). 기나긴 세월의 고통스런 상황을 견디다 견디다 한계치에 다다른 인생의 억울함이 가득히 묻어나 있는 호소가 요셉의 입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이 간절한 호소를 술 맡은 관원장이 새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2년 뒤 바로가 꿈을 이야기할 때에야 비로소 요셉을 기억합니다. 13년 세월의 마지막 정점이 되는 시간인 그 2년은 요셉에게 그 어디에서도 빛을 볼 수 없는 새벽 미명의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분명 함께하시나 현실은 더 이상 짙어질 수 없는 어둠만이 보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새벽 미명의 시간을 허락하실까요? 요셉에 관해 말하는 시편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8-19). 이렇게 자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몸이 묶인 삶, 그 어둠의 시간은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의 단련이었다고 합니다. 단련은 금과 은을 제련하여 순금으로 만드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세워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세상의 말로 가득한 어둠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신뢰를 두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지막 2년이 여호와의 단련을 통해 미명 속에서도 말씀의 빛을 보는 시간이며, 마침내 요셉의 입에서 억울함의 호소인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가 아닌 ‘하나님께서’라는 고백만이 흘러나오는 시간이 됩니다. 삶의 새벽 미명은 이 길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김 재 구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