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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호구’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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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2회 작성일Date 21-03-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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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며 듣고 싶지 않은 말 중에 ‘호구’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 뜻을 찾아보면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세상에 호구되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세상은 “참을 인이 셋이면 호구된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최소한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 더 이상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기도 합니다.
설사 그렇게 갚아줄 수 없는 처지에 있을 때에는 어딘가에라도 호소하여 그 억울함을 풀려고 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처하여 호구가 되는 삶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서 사노라면 어수룩하여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노라니 그렇게 살아야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라”(마 5:39)는 말씀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세상이 교회를 향하여 왜 그렇게 살지 않느냐고 항변합니다.
코로나시기에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사지로 내몰립니다.
얼마 전에 한 자영업을 하시는 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으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8년간 운영해온 가게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올 2월에 폐업하는데 그 안에 교회를 향한 원망이 배어있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그 분의 말을 직접 인용해 봅니다. “8년 동안 장사하면서 별의별 일 다 있었지만, 코로나 상황은 도저히 이겨내질 못하겠다. 세월호, 메르스, 고래회충, 콜레라 파동도 다 버티고 잘 해왔었는데 이건 너무 세다. 이 와중에 집합금지 어기고 백 명씩 걸려대는 종교집단 자기들이 저지르는 짓 때문에 열심히 사는 자영업하시는 분들은 무슨 죄냐. 정부 방역 수칙 지키는 사람만 호구인가 싶기도 하다.”
세상 사람이 교회 때문에 호구됐다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 말이 왜 그렇게도 가슴 쓰리게 다가오는지 마음 한켠이 먹먹합니다.
목회데이터 연구소에서 코로나를 겪고 있는 이 일 년 상간에 세상 사람들의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하였는데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코로나 시작 시점인 2020년 1월에는 32%정도였던 것이 일 년이 지난 올 1월에는 21%로 급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익을 위해 국가가 종교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찬성률이 작년이 59%였다면 올해는 86%로 급상승했습니다.
물론 이 속에는 오해도 들어 있습니다. 교회 발 확진자 비율은 실제 전체대비 11% 정도인데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감정치는 44% 정도로 거의 절반정도가 교회책임인 것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까지 더해 교회를 향한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한국 교회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있고,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자유까지도 제한시켰으면 하는 바램을 보며 참 멀리도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쉬운 것부터 회복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교회 발 코로나가 많은 부분 방역규정으로 금하고 있는 식사와 소모임 때문이란 점에서 그 부분부터 솔선수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부분은 역시 예배에 관한 것입니다.
예배에 관해 제시되는 다양한 의견들을 조율하여 하나의 통일된 안을 내놓을 수 있는 개신교의 최고의결기관이 없다는 것은 가장 큰 약점입니다.
그러다보니 교단끼리 나뉘고, 한 교단 안에서도 개 교회주의로 흘러가는 분열을 경험하게 됩니다.
단순히 “대면 혹은 비대면 예배냐, 정상 혹은 비정상 예배냐?”라는 용어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갈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한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하늘 아버지를 경외하는 형제, 자매들이라면 최소한 예배에 있어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호구가 될 것인가, 세상을 호구로 만들 것인가? 이제 말을 멈추고 말씀과 기도로 겸손히 주의 뜻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김재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