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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순리 위에 계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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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20회 작성일Date 21-12-0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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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속에는 형제의 순위가 뒤바뀌는 내용이 극히 자주 등장합니다. 동일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도 있고, 다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도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형제를 시작으로 이스마엘과 이삭으로, 에서와 야곱으로, 세라와 베레스로, 므낫세와 에브라임으로 연결되며 그 결론에 이릅니다. 이렇게 형제들의 순위가 바뀌는 내용으로 설교를 하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1장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분명하게 장자에 대한 권리를 지켜줄 것을 법으로 제정해 놓으셨는데 왜 이렇게 변칙적으로 순위를 바꾸시는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신명기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사람에게 두 아내가 있고, 안타깝게 한 아내는 미움을 받고, 다른 아내는 사랑을 받는데 두 아내 다 아들을 낳았는데 만약 미움받는 아내의 아들이 장자이고, 사랑받는 아내의 아들이 차자일지라도 결코 그 순위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아들들에게 소유를 기업으로 나누어 주는 날에 반드시 그 미움 받는 자의 아들을 참장자로 인정하여 그에게는 소유에서 두 몫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신 21:15-17). 이것을 하나님께서 법으로 명시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창조의 질서이며, 삶의 중요한 순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함께 생활하는 형제와 자매들 안에서의 질서는 가정의 평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 속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나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레 19:32)라는 어른을 존중하는 삶 또한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이렇게 정해진 질서를 파괴하는 것 같은 ‘순위바뀜’의 이야기가 거듭 나타날까?”라는 의문은 충분히 가질만 합니다. 특히나 하나님께서 차후로 주신 법조문까지도 거스르는 모순처럼 보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예외적이고, 변칙적인 내용을 여러 차례 제시해 주시는 내막 속에는 사람의 완악함에 대한 염려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람은 법제화, 규율화라는 법칙을 선호합니다. 그것이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 준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세상만사가 정해진 법칙대로만 움직여 준다면 그것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삶의 순리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교리화시켜 “첫째는 최고다”라는 불변의 법칙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는 그 법칙 뒤에 숨거나 그 법칙을 이용하여 힘과 권력으로 삼아 동료 인생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삼을 때가 있습니다. 더욱 심각하게는 그 법칙이 신격화되어 무소불위의 위력으로 자리하기도 합니다. 이는 신앙인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창조의 질서가 어느 날 하나님으로 둔갑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예가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질서에서 중요한 한 날로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모든 초점을 맞추는 날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시간의 주인이 아니고, 생계의 주권자가 아니며,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을 바라봄으로 다시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는 거룩의 시간입니다. 그러한 정신은 다 빼버리고 엄격한 법칙을 만들어 그 날을 신격화하여 자신들의 손안에 둠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것이 바로 종교지도자들의 악행이었습니다. 안식일을 만드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 안식일을 완전케 하려 함에도 사람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미 안식일이 하나님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장자권 또한 이와 동일할 수 있습니다. 창조의 순리를 교리화시키고, 신격화시켜서 장자권을 권력의 도구로 삼아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창조의 질서는 공동체의 평안을 위한 것이지 권력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조 질서 위에 계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