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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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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74회 작성일Date 22-04-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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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형은 로마인들이 시행하기 전에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사형집행 방법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형벌은 로마에서 주로 이방인 범죄자들, 하층민들 혹은 노예들과 특히 반역자들에게 행해졌던 처형방식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인 요세푸스는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 점령 후에 행했던 십자가 형을 목격한 후에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가장 잔혹한 형태의 죽음’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정치가이며 사상가였던 키케로(기원전 106-43) 또한 이 십자가 형을 ‘가장 극한 형태의 형벌’이라고 표현하며, "십자가는 로마 시민에게는 그 생각조차도 근처에 와서는 안 되며, 마음은 물론 눈에도. 귀에도 스쳐 지나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로마의 정치가이며 지성이었던 세네카(기원전 4-기원후65) )는 루실리우스에게 보내는 서신 (Epistle 101 to Lucilius)에서 자살을 하는 것이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말하며, 그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을 상당히 신랄한 언어로 표현하였습니다.

단번에 죽는 것 보다 자신의 생명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나가고 죽음의 고통이 사지를 파고들며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나무에 박혀서 저주스런 긴 고통으로 신음하며, 이미 제 모양을 잃고 일그러진 몸둥이와 채찍 자국으로 흉측하게 부어 있는 가슴과 양쪽 어깨로 인해 기나긴 고통과 함께 처절하게 숨을 몰아쉬며 죽어 가기를 기꺼이 택할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은 이러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다른 방법을 찾고자 애쓸 것이다. 

이러한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을 더욱 공포스럽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심각한 상처가 없는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최소한 하루 이상이 소요되며 심지어는 사흘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입니다. 그 잔혹한 십자가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망설임 없이 나아가십니다. 주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단 하나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은 몸과 마음을 죄의 형벌에 내어주셔서 사지를 파고드는 채찍, 손과 발을 뚫고 들어갈 대못 그리고 옆구리를 찌를 창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밖에는 우리의 죄를 끝낼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죽음에 넘기기 위해 한 말인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 도다" (요 11:50)를 성취하여 가야바를 비롯한 이스라엘 온 민족은 물론 세계 모든 민족들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결코 억지로가 아닌 기꺼이 이루어내십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전함에 의미 있는 단어 하나를 사용합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여기서 ‘떠나가시니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라디도미(παραδίδομι)’로 이 단어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포기하다, 넘겨주다, 맡기다, 버리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강한 의지가 들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힘에 굴복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음을 보시고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 우주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큰 것을 포기한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포기입니다(요 10:17-18).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셔서 영원하신 생명을 포기하셨기에 더 이상 우리의 생명을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와 책임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값진 생명을 가장 고귀하게 살아가는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