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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속의 일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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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563회 작성일Date 22-06-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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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택이 있는 저희 아파트에는 지상 주차장만 있어서 퇴근시간에는 만원을 이루고, 늦게 들어오는 차들은 이중주차를 하게 되기에 늘 교회를 오가며 다양한 종류의 차들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습니다. 그런 차량들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차들이 서 있는데 동일한 차종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고, 설사 동일한 차종이라 해도 차의 색상이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기에 흡사 다른 종류처럼 보입니다. 수백 대의 차량들이 어떻게 이렇게도 다양할 수 있을까 싶어 신기할 뿐입니다. 우리나라 차량 제조업체와 외국 자동차 회사들이 꽤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도 다양한 외형과 색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색상만 보더라도 여러 회사에서 정식으로 출고될 때에도 이미 100여 가지가 족히 넘는 다는 전문가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검은색 계통일지라도 짙은지, 옅은지, 반짝이는지, 아닌지에 따라서도 다양한 색상이 연출될 수 있다고 합니다. 거기다 소비자가 특정한 색상을 주문하면 그 색상대로 맞춰주기도 한다니 자동차의 색상은 거의 무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동차가 아무리 외형과 색상이 다양할지라도 자동차 본연의 목적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동차는 교통수단이기에 운전자를 목적지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이러한 기능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면 아무리 멋진 외형도, 화려한 색상도 결코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전시장에 전시된 목적을 잃은 예술품일 뿐입니다. 차량의 미적 예술성도 필요하지만 본연의 제 기능을 발휘 할 때 그 예술성도 빛을 더욱 발하는 것입니다. 차량의 기능을 전혀 못하는 예술성은 주객이 전도된 모조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양한 차량의 외형과 색상은 본질적인 한 가지에서는 반드시 일치되어야 합니다. 바로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과 안전성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없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동차를 부르는 명칭은 ‘폐차’입니다. 즐비하게 늘어선 자동차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노라니 문득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관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동차의 외형과 색상의 다양성만큼이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형태와 색깔의 다양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성향이 다르듯이 신앙의 모습 또한 다양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동차의 외형과 색상의 다양성이 결코 문제되지 않듯이, 신앙의 형태와 색깔의 다양성도 결코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닌, 비본질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종류의 자동차가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과 안전성이라는 목적이 동일하게 확보될 때 다양한 외형도, 색상도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일 수 있듯이 신앙의 형태와 색깔 또한 본질에서 동일할 때 문제가 아닌 장점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통성기도를 선호한다, 묵상기도가 좋다, 아니다 방언기도가 힘을 준다,” “국내 선교가 먼저다, 아니다 해외 선교가 우선이다,” “미래세대에 집중해야 한다, 아니다 실버세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앙인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아니다 책임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등등등 신앙의 다양한 형태와 색깔은 본질을 이루는 다양한 방식입니다. 자신의 성향 따라 나아가되 다른 쪽을 인정하는 너그러움의 덕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 본질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누린 존재이기에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가 삶의 예배로 매일의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입니다. 그 삶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방식은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펼쳐져야 하며 자동차의 외형과 색상의 다양성만큼이나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김  재  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