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긴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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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영순 댓글 0건 조회Hit 60회 작성일Date 26-09-23 15:37본문
사울과 다윗의 삶이 얽혀 빚어내는 갈등의 파노라마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터널을 지나야 했던 당사자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억울한 쪽은 다윗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신속하게 사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십여 년이 넘도록 다윗을 쫓기는 도망자의 삶에 두셨을까?”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순간에도 모든 상황을 끝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울의 광기로 피해를 본 이가 비단 다윗뿐이었겠습니까?
거의 멸족당한 놉의 제사장 가문, 다윗과 함께 유랑했던 용사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사울의 수하에 있다가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군인들까지 헤아리면 그 상처는 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고래 싸움에 터진 새우 등’에 불과한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개미 한 마리의 생명조차 그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대합니다.
그 주권과 섭리 속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에게는 낮아짐을 배우는 ‘광야’가 필요했고,
불순종의 죄에 빠진 사울에게는 돌이킬 ‘회개의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진정한 왕도를 빚어내는 훈련장이었고, 사울에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쫓고 쫓기며 보낸 긴 시간은 헛된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두 사람 모두를 살리기 위한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 37:5–7).
지금 깊은 수렁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고뇌를 겪고 계십니까?
그 유일한 정답은 상황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나온 과거를 아시고, 현재의 얽힌 갈등을 꿰뚫어 보시며, 마땅히 이르러야 할 가장 선한 미래의 결론을 이미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진짜 아픔을 헤아려 온전한 답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란,
그분의 손에 미래를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 끝에는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며, 마침내 모든 상처가 회복되는 은혜의 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며 오직 그분만 신뢰하는 현재는, 동시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요청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의 죄를 돌아보는 회개의 기회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더 깊은 은혜로 빚어지는 거룩한 훈련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국 ‘맡긴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손에 내 인생의 주도권을 온전히 양보하는 가장 적극적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김 재 구 목사
그러나 그 터널을 지나야 했던 당사자들에게는 하루라도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어느 모로 보나 억울한 쪽은 다윗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신속하게 사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십여 년이 넘도록 다윗을 쫓기는 도망자의 삶에 두셨을까?”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순간에도 모든 상황을 끝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울의 광기로 피해를 본 이가 비단 다윗뿐이었겠습니까?
거의 멸족당한 놉의 제사장 가문, 다윗과 함께 유랑했던 용사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사울의 수하에 있다가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군인들까지 헤아리면 그 상처는 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고래 싸움에 터진 새우 등’에 불과한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주권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으며, 개미 한 마리의 생명조차 그 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대합니다.
그 주권과 섭리 속에서,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다윗에게는 낮아짐을 배우는 ‘광야’가 필요했고,
불순종의 죄에 빠진 사울에게는 돌이킬 ‘회개의 기회’가 필요했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은 진정한 왕도를 빚어내는 훈련장이었고, 사울에게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이 쫓고 쫓기며 보낸 긴 시간은 헛된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두 사람 모두를 살리기 위한 생명의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 37:5–7).
지금 깊은 수렁이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고뇌를 겪고 계십니까?
그 유일한 정답은 상황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나온 과거를 아시고, 현재의 얽힌 갈등을 꿰뚫어 보시며, 마땅히 이르러야 할 가장 선한 미래의 결론을 이미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의 진짜 아픔을 헤아려 온전한 답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란,
그분의 손에 미래를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 끝에는 정오의 빛보다 더 밝은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며, 마침내 모든 상처가 회복되는 은혜의 날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 맡기고 의지하며 오직 그분만 신뢰하는 현재는, 동시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는’ 인고의 시간이 요청됩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의 죄를 돌아보는 회개의 기회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더 깊은 은혜로 빚어지는 거룩한 훈련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국 ‘맡긴다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가장 안전한 손에 내 인생의 주도권을 온전히 양보하는 가장 적극적인 믿음의 고백입니다.
김 재 구 목사


